나는 누구인가? 심오한 철학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심오한 철학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디엔가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행동을 한다면,
생활하는 데 조금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어디 에서도 나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크게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 이었고,
작게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었지만.
국민으로서의 존재감도, 가족으로서의 소속감도 갖지 못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용성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고 느낄 때 이었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기소침해 있지는 않았었습니다.
역시 또 말하게 됩니다만. 한 번의 교통사고로 가진 것은 적었지만.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다 잃었다는 좌절감에 무엇 하나 자신 있게 행동하고,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땅만 보고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 하나님께 붙들림 당하고도 몇 년 동안은,
그런 의기소침해 있는 날의 연장이었음을 인정 합니다.
참 하나님 용성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하나도 없습니까?
당신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게도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제발, 제발 하고 간절히 기도드린 후에, 지금 하고 있는
형제님을 부르짖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꼭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하고
,(찢어 보낼 말씀이 생각나지 않을 때,) 후회 할 때도 있고,
나의 이런 심정을 알아 줄 사람이 어디에 있는 가하고, 미련한 한숨이 나오지만.
이런 작은 용성을 위로해주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알아주시는 참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또 용성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 보는 사랑하는 형제님임을 알기에 믿기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금은 새벽 4시 54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나를 알아주는가?
용성의 마음이 주를 향해 있다는 것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주님께서만 알아주고,
주님께서만 믿어 주면 된다는 생각의 끝으로,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주님의 피가 가슴에 묻은 구원받은 형제님께서는,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주님께로 향해 있습니까?
오늘 서울 강서 교회의 변 인교 목사님의 너무나도 확실한 입술을 통해,
참 하나님께서 당신을 증거 하시는 자리에, 형제님의 마음이 있듯.
형제님의 몸도 말씀이 증거 되는 자리에 용성과 함께 거할 것을 믿어 의심 치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오직 사랑만 드리고 받고 싶은 구원받은 oo 형제님이 너무나도 좋은 구원받은 용성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말씀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