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기원 여 이 동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계영기원 여 이 동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야고보서 4장 10절 말씀
10. 주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계영기원 여 이 동사-잔이 넘치기를 바라지 않으며,
너와 함께 죽기를 바라노라"
작고하신 최인호 선생님께서 집필하셨던,
소설 "상도"의 주제를 함축했던 단어라고 용성은 생각합니다.
예전에 참 하나님께 붙들림 당하기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된 후에,
서울에서 심신을 회복하던 몇 년의 시간 동안과,
여수로 귀향한 후에도, 몇 번을 읽었던 책입니다.
교통사고 전에도, 세상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고 꿈꾸면서
이런 종류의 소설책이나, 자기 개발과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을 주로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고 준비하면서
생활했을 때는, 가진 것은 너무나도 부족했지만,
이것한가지는 알고 있었고, 늘 생활의 경계로 삼고,
세상을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지속해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한다면,
자기를 내세우려는 교만을 부리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신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재능을 믿고, 안 하 무인 격으로 행동을 한다면,
어느 집단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용성도 허물없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허세도 부리기도 했고,
잘난 체 아닌 잘난 체를 했던 기억이 있었지만,
윗분들에게는 공손히 대하려 했고,
아랫사람들 에게는 하대를 하지 않으려 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서 우러나왔던 행동이었다고 우기고 싶지만,
솔직히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겸손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을 지속적으로 낮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이놈은 깔아뭉개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고,
업신여김을 받았던 받았던 때가 많이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저희 큰형님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ㅠ
빌립보서 2장 5~11절 말씀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곳 여수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에는.
예전에도 말씀 드린바 있지만.
잘난 사람이 한사람도 없더라구요,
그 후로 말씀 안에서, 주님의 희생의 피를 가슴에 묻히고
감사함으로 구원받고 난 후에, 비로소
원래부터 못난 것이 아니라.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아담 이 후의 세상 사람들을 천국에서 살게 하시려고
말씀에 온전한 순종하심으로, 악한 자들에게
모진 고통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십자가 높이 달리 사
양 손과 양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긴 창으로 찔림의
고통의 고난을 당하시고, 옆구리를 긴 창으로
찔린 후에, 모든 물과 피를 쏟고,
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는
지옥 갈 죄와, 가서 받아야만 했던 모든 고통의 피눈물 나는 형벌을
없이 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 하고 죽었다가.
장사한지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던,
주님의 진정한 아가페 적 참 사랑에 감동과 감사를 드려,
아무런 값없이 받은 구원에 합당하게 행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님께서 행하셨던 낮은 마음을 닮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형제자매님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고 생활할 수가 없었습니다.ㅠㅜ
(잘난 것도 없었지만. 허세를 부릴 수 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모두가 그렇게 겸손하게 행동들을 했었지만.
용성이 처음 교회에 와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했던 때를 생각하고,
/주님 안에 거한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겸손을 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주님의 진정한 아가페 적 참 사랑을 마음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주님의 사람으로 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많이는 아니지만. 완악했던 용성도 주님 안에서
10년을 넘게 말씀을 배우고 익히면서,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이듯.
마음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달라 붙드라구요,ㅎㅎ(쪼끔요 ㅎㅎ)
그때 말씀앞에서 너무나도 겸손하시던 형제님이 오늘도 내일도,
아니 언제까지도, 용성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오직 사랑만 드리고 받고 싶은
구원받은 00 형제님이 너무나도 좋은 구원받은 용성입니다.^^
잠언 16장 18~19절 말씀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게 하여 탈취 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